글 상세

내가 살던 집 바로 앞에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었다. 그 공원은 온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젊은 남녀들의 데이트 장소였으며, 명절이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손풍금과 북, 템버린을 들고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의 공간이기도 했다. 정월대보름이면 보름달이 가장 잘 보이는 공원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한 해의 소원을 빌었다.

나무 하나 보기 힘든 민둥산이 대부분인 북한이지만, 이 공원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제법 많았다. 여름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공원 가득 퍼졌고, 짙은 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버드나무 그늘 아래 누워 더위를 식히며 낮잠을 잤다. 새벽이면 정자에서는 공연을 준비하는 언니들이 발성 연습을 하는 노랫소리가 동네를 깨우곤 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녹이 슬어버린 회전그네도 있었고,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있었다.

이 공원의 이름은 청년공원이다.

청년공원에는 나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기도 자주 들어오지 않았고 장난감도 귀했던 시절, 나는 늘 밖에서 흙을 만지고 자연과 어울리며 뛰어놀았다. 그중에서도 청년공원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많았다. 동네 친구들, 언니 오빠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면 청년공원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숨을 곳이 워낙 많아 술래는 날이 저물도록 친구들을 찾느라 바빴다. 나는 '언제쯤 나를 찾으려나' 하며 숨죽여 기다리곤 했다. 그러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엄마가 \"밥 먹자!\"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집으로 뛰어갔다. 술래였던 친구도 친구들을 찾다가 엄마의 부름이 들리면 그대로 집으로 갔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끝내 나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밥 먹으러 들어갔던 것이 아닐까 싶어 웃음이 난다.

청년공원은 사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봄에는 새싹을 밟으며 곤충을 잡으러 다녔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했다. 가을이면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 먹으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겨울에는 수북이 쌓인 눈 덕분에 그 어떤 눈썰매장도 부럽지 않은 천연 눈썰매장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여러 동물을 키웠다. 북한에서 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한국처럼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모두 생계를 위한 존재였다. 우리는 개, 토끼, 닭, 염소를 키웠다. 개는 도둑이 많은 북한에서 집을 지키는 역할을 했고, 토끼는 팔거나 고기로 먹기 위해 길렀다. 북한에서는 해마다 토끼 가죽을 1인당 몇 장씩 국가에 제출해야 하는 할당량도 있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토끼를 잡은 뒤 가죽의 네 귀퉁이를 못으로 박아 말리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닭은 계란을 팔아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키웠다. 집에서 닭을 길렀지만 정작 계란을 먹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운반하다 깨졌거나 너무 작아서 팔 수 없는 계란이 생겼을 때만 겨우 맛볼 수 있었다. 염소 역시 우유를 짜서 판매하기 위해 키웠다. 우리 가족에게 동물은 가족이라기보다 생계를 책임지는 소중한 재산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작은 손으로 매일 청년공원에 나가 토끼가 가장 잘 먹는 세투리와 쑥 같은 풀을 한가득 뜯었다. 토끼가 맛있게 풀을 먹는 모습을 보면 괜히 뿌듯했다. 또 목줄을 맨 염소를 공원으로 데려가 풀밭에 묶어두는 것도 내 몫이었다. 염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동안 나는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가끔 한 번씩 염소가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염소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묶어두고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았다. 너무 신나게 놀았던 탓일까. 어느새 염소는 까맣게 잊은 채 공원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늘 집 앞에 묶여 있던 하얀 염소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염소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큰일 났다.' 부모님께 크게 혼날 것 같아 겁이 났고, 혹시 염소를 도둑맞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황급히 청년공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내가 묶어두었던 자리에는 염소가 없었다. 가족 모두가 공원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날 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미안함에 마음이 무거웠다. 매일 염소를 돌봐야 하는 부담에서는 벗어났을지 모르지만, 그 이후로도 청년공원에서 하얀 염소를 볼 때마다 혹시 우리 집 염소는 아닐까 싶어 달려가 확인하곤 했다.

청년공원은 나의 평범했던 하루하루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지만 그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꿈에서라도 한 번쯤 다시 그곳을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북한의 문이 열리는 날, 사랑하는 세 아이의 손을 잡고 그 공원을 함께 걷고 싶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여기가 엄마가 어린 시절을 뛰어놀던 청년공원이란다.\"

그날이 꼭 오기를, 오늘도 조용히 소망해 본다.

작성자 소개

윌로우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회원입니다.

나오미 작성 글 : 4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